시작하는 운과 정해진 결말의 관계

운명에 정해진 흐름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시작과 결말의 관계를 살펴보고, 하도와 낙서를 통해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 보겠습니다.
‘시작’이란 없다는 말부터 생각해 볼게요. 우리는 오늘 시작해서 내년에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작과 끝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선상에 같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오늘 무엇을 시작했다면, 결국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도 살펴볼 수 있어요. 이것이 시작하는 운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요?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물리적인 결과와, 그 안에서 내가 갖는 마음가짐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명식에서 2023년에 입사하고 2027년에 그 직장을 그만두는 흐름이 있다고 해 봅시다. 이 사례에서는 2027년의 퇴사라는 물리적인 결과를 바꾸기 어렵다고 봅니다. 2023년에 입사한 모든 사람이 2027년에 퇴사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해당 명식과 시작한 운을 함께 놓고 보는 예시입니다.
그런데 같은 퇴사도 그다음 행보는 다를 수 있습니다. A는 퇴사 후 백수 생활을 하고, B는 퇴사 후 더 좋은 회사에서 제안받아 들어갑니다.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건은 같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흐름은 다르죠. 일을 쉬는 사람에게는 다시 공부하는 운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무엇을 시작할 때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다음 행보가 크게 달라집니다. 시작과 끝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충돌하는 두 기운을 모두 배우는 방법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시작하는 운에 따라 정해져 있는 결말 자체를 바꾸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법은 두 기운의 충돌 사이에서 휘둘리기만 하지 않고, 두 가지를 모두 배워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와 수가 서로 부딪히고 있다고 해 볼게요. 두 에너지의 충돌이 너무 심해지면 변화가 자꾸 일어나고, 사람은 힘들어서 결국 그만두게 됩니다. 어떤 일이 끝나는 것을 단지 겉으로 드러난 사건 하나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두 기운이 어떻게 부딪히고 있는지 보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계속 휘둘리는 것과, 두 기운을 모두 배우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충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데 머무는 대신, 화와 수 양쪽에서 배워야 할 것을 모두 배워 가는 방향입니다. 어느 한쪽에 대한 미움이나 안타까움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 관계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죠.
이 관점에서는 이혼할 것으로 읽히는 운에 이혼하지 않거나, 정리해고가 예상되는 운에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거나, 건강과 관련해 예상했던 사건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결말이 바뀌는 예로 설명합니다. 사건이 끝난 뒤의 행보가 달라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두 기운을 배우는 방식에 따라 사건 자체의 결말도 뒤바뀔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바꿔 나가면, 죽은 뒤 다른 별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로도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지구에 태어나 정해진 인생을 사는 것과, 서로 충돌하는 두 기운을 모두 배우며 살아가는 것을 연결해 설명하고 있어요. 충돌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운을, 두 가지를 함께 배우는 운으로 활용한다는 뜻입니다.
핵심은 운의 충돌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그 사이에서 고통에 휘둘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두 기운 모두를 배워 가는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하도·낙서: 생수·성수와 숫자의 오행

이제 하도와 낙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숫자를 두 줄로 나누어 볼게요. 생수는 1, 2, 3, 4, 5입니다. 성수는 6, 7, 8, 9, 0입니다. 생수는 원천이 되는 수이고, 생수를 통해 완성된 숫자가 성수입니다.
여기서 완성이라는 말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생수에서 더 발전되어 나타난 형태라는 뜻입니다. 숫자의 오행을 연결하면 1과 6은 수, 2와 7은 화, 3과 8은 목, 4와 9는 금, 5와 0은 토입니다.
하도는 선천, 낙서는 후천이라고 합니다. 선천과 후천은 먼저와 나중이라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어요. 하도는 하늘의 질서, 낙서는 땅의 질서를 설명합니다.
두 도면에서 홀수와 짝수의 위치를 비교해 봅시다.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입니다. 짝수는 서로 짝이 맞아 지키는 쪽으로, 홀수는 짝이 맞지 않아 움직이는 쪽으로 연상하면 구별하기 쉬워요.
하도에는 홀수와 짝수가 함께 자리합니다. 반면 낙서의 동서남북에는 1, 3, 7, 9, 홀수인 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짝수인 음은 정방향에서 조금 비켜난 옆자리에 있어요. 양이 중심 방향에 자리하고, 음이 옆에서 양을 돕는 형상입니다.
낙서의 수를 더하면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15가 나옵니다. 4 더하기 5 더하기 6은 15, 3 더하기 5 더하기 7도 15, 8 더하기 5 더하기 2도 15입니다. 9 더하기 5 더하기 1도 마찬가지예요. 또 생수 1, 2, 3, 4, 5를 모두 더해도 15가 나옵니다. 낙서의 합이 생수를 모두 더한 수와 같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양은 시작시키고, 음은 지키는 기운입니다. 하도에서는 음과 양이 함께 짝을 이루고, 낙서에서는 양이 무언가를 시작하면 음이 그것을 돕고 지키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어요. 도면의 점을 단순히 외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음과 양이 어떤 관계로 자리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주역의 여섯 효로 보는 하늘·인간·땅

하늘과 인간, 땅의 관계를 주역의 여섯 줄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줄을 효라고 합니다. 세 효가 한 묶음이고, 두 묶음이 합쳐져 여섯 효의 괘를 이룹니다.
여섯 효에서 제일 위의 두 개는 하늘, 가운데 두 개는 인간, 제일 아래의 두 개는 땅을 나타냅니다. 가운데의 인간은 아래 묶음에도 한 부분, 위 묶음에도 한 부분을 걸치고 있어요. 그러므로 인간은 하늘과 땅에 반반씩 걸쳐 있는 존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주에서도 이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천간은 하늘을, 지장간은 땅을 나타냅니다. 천간과 지장간에는 같은 글자가 있습니다. 반면 인간을 나타내는 지지는 그 둘과 모양이 달라요. 자, 축, 인, 묘처럼 열두 지지의 글자로 나타납니다.
천간의 글자가 지장간에서 뿌리를 얻는 것을 통근이라고 합니다. 위와 아래에 같은 글자가 있어 연결되는 것이죠. 그 사이에 인간을 나타내는 지지가 있다는 구조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이 반반씩 섞여 있는 존재입니다. 나를 뜻하는 일간은 천간이니, 일간만 놓고 보면 원래 우리는 하늘에 속한다고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간만으로 나의 모습을 다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일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입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곧 나와 같은 자리로 봅니다. 일간은 하늘이지만, 나는 일지의 영향을 계속 받고 있어요. 그래서 열두 지지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을 반반씩 지닌다는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일간이 나라는 이유로 지지를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떼어 놓지 말고, 일지의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하늘을 나타내는 일간과, 내 모습에 깊이 영향을 주는 일지를 함께 보는 거예요.
천간·지지·지장간, 잘 보이지 않는 나 이해하기

우리는 천간을 가장 잘 인식합니다.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에요. 반면 지장간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먼저 천간을 보고, 문제가 생긴 뒤에야 지지를 살피며, 지장간까지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주역의 효는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순서로 봅니다. 특히 아래 세 효에서 위 세 효로 넘어가는 단계가 중요해요. 이를 명리의 구조로 연결하면 지장간과 지지를 거쳐 천간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간처럼 눈에 잘 보이는 것만 따라가기보다,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 나도 몰랐던 모습, 또는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향이 내 안에 있었는데도 모르고 지냈다가,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죠.
둘째,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당연한 존재를 인식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셋째, 이 두 가지를 보기 좋게 활용합니다. 여기서 잘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용 빈도를 높인다는 뜻이 아니에요. 알아차린 나의 모습과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까지 살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부터 신경 쓰는 과정에서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영향까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열두 지지는 옷을 입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 글자가 섞여 하나의 지지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그 글자의 에너지를 볼 때는 각 계절의 계절감을 우선해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금 안에 무토, 임수, 경금이 있으면, 어느 글자만 따로 집어 판단하기 전에 그 계절을 떠올립니다. 신월은 양력 8월이니 우리나라 기준으로 아직 덥다는 계절감을 먼저 잡는 것이죠. 절기는 단순히 그날의 날씨만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천문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에 따른 계절의 느낌을 먼저 생각하면 지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시작과 결말 속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 하도·낙서와 하늘·인간·땅의 관계를 배웠습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천간뿐 아니라 숨은 나의 모습과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를 인식하고, 지지를 볼 때 계절감을 먼저 살펴보세요.